2009년 11월 24일 화요일

엄마를 부탁해


엄마를 부탁해
저자: 신경숙


나는 베스트셀러는 잘 읽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혹해서 읽었다가 내 취향이 아닌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책도 100만부 이상 팔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별로 관심갖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 기회에 우연히 읽게 되었다.

굉장히 몰입하게 되는 책이었다. 한순간에 빠져들었고, 마음 속 깊숙히 여운이 길게 남았다.


둘째의 집에 가려고 서울로 상경하는 길에 서울역에서 잊어버리게 되는 엄마.
엄마에게는 남편이 있었고 두 아들과 두 딸이 있었다.
전쟁 때 밤마다 인민군이 내려와 처녀를 납치해 갔기에 어린나이에 얼굴도 한번 보지 못한 남자에게 시집 온 엄마는 학교를 다니지 못한 것이 한이었고 글을 읽지 못함에 부끄러워 했다.
자식들이 모두 서울로 올라간 뒤 혼자 밭일을 하며 개나 돼지나 닭 따위를 키우며 시골 살림을 꾸려나갔고, 밭에서 수확한 작물로 음식을 해 서울로 보냈다.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 한 번 걸지 않고 전화가 걸려와도 잘 받지 않는 딸이 원망스러웠고, 여동생의 안부를 물어도 아는 것이 없는 아들이 원망스러웠다.
작가인 딸이 쓴 책을 읽지 못함에 미안했고, 법학을 공부하고 싶어했던 아들에게 공부할 돈을 채 모으기도 전에 동생을 짐지워준 것이 평생 미안했다.
똑 부러지는 막내 딸이 벌써 세 아이의 엄마라는 것이 대견했고, 아직까지 결혼하지 않은 큰 딸이 걱정스러웠다.
항상 밖으로 나도는 남편이 원망스러웠고, 시어머니처럼 깐깐하게 굴었던 남편의 누나가 원망스러웠다.
형수, 형수하며 그렇게 잘 따랐던 착한 남편의 동생을 끝내 학교를 보내주지 못해 미안했고, 힘들 때만 찾아 신세한탄을 듣게 했던 그 사람에게 미안했다.

엄마가 처음으로 무엇을 사줄까 했을 때 책을 사달라고 했던 큰 딸은 작가가 되었다.
엄마가 비행기는 위험하다고 했지만 항상 해외여행을 즐겨 다녔다. 엄마가 비행기타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았기에 연락하지 않고 떠나기 일쑤였다.
항상 나중에 전화할께 하고 전화하지 않았다.
어서 결혼하라고 했지만 급하지 않았다.
엄마를 잊어버린 후 후회했지만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빠가 왠 젊은 여자를 집에 데려왔을 때 엄마는 집을 나갔고 그 여자는 도시락을 싸주었다.
그 도시락을 마다하던 큰 아들은 검사가 되리라 마음먹었다.
검사의 길을 걷지 않고 취직을 했을 때 엄마는 나무랐다. 검사는 엄마의 꿈이기도 했다.
엄마는 항상 미안하다고 했다.
동생은 왜 엄마가 오빠에게 항상 미안해야하느냐고 했다.
동생이 엄마가 아프다고 했을 때 안부 전화를 했지만 엄마는 스스로를 괜찮다 했다.
엄마를 잊어버린 후 아내에게 화를 냈지만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집에가면 어디서곤 얼굴을 빼꼼 내미는 아내가 있었다.
젊은 시절 밖으로만 나돌았다. 시골이 싫었다.
몇 일을 혹은 몇 달을 돌아다니다가 집에 가도 언제든지 있었다.
항상 같이 있었으면서도 아픈 줄 몰랐다. 아니 알았지만 별 것 아니라 생각했다.
집에오면 밥을 해내왔고, 배고프면 밭에서 채소를 뽑아다 전을 부쳐주곤 했다.
병원도 가고 수술도 받는 동안 아내가 아픈 줄을 몰랐다.
아내를 잊어버린 후 아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음을 깨달았지만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루던 사흘이던 자신보다 일찍죽으라고 말하던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에게도 소녀시절이 있었다.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엄마도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기에 항상 엄마였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책에 나오는 큰 딸과 나는 닮았다.
나 역시 밖으로 나돌기를 좋아했고, 엄마와 대화를 하려하지 않았다.
짜증이 나면 짜증을 냈고, 배고프면 밥을 달랬고, 전화를 할 때면 내가 필요해서 였다.
이 책을 읽은 후에 마음이 저릿하기는 했지만 엄마에게 하는 행동이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는 철이 덜 들었나 보다.


〃너에게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다.
너의 엄마에게도 첫걸음을 뗄 때가 있었다거나 세살 때가 있었다거나
열두살 혹은 스무살이 있었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너는 처음부터 엄마를 엄마로만 여겼다.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인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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